장 데니 쌩씨가 자렐에게 보내는 답변 메시지

답변 (2011년 1월)
나의 (우리의) 비방자에게 답변


오세아니아 대륙 가이드인 자렐은 심지어 제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이건 중요합니다) 제가 라엘을 증오한다며 비난했습니다… 단지 라엘과 어떻게 살았는지 보고했을 뿐인 제 책을 말입니다. 이러한 반응으로 보아 이 가이드는 라엘리안이나 라엘에 대한 어떠한 증오나 부정적 행위없이 제가 밝힌 비평들로 인해 라엘에 대한 그의 신념이 진정으로 흔들렸던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사실의 보고와 현실의 경험은 증오로 가득차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가이드는 라엘이 제게 무엇을 폭로했는가를 알았고 정말 실망했기에 저를 재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들추기보다 저를 들춰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라엘이 제게 밝혔던 고백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저를 재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가이드는 마크가 새로운 자료를 통해 새로운 지식이 가져다준 현실 경험과 그의 객관적인 분석을 밝히려는 정직성과 용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마크 우드게이트를 뒤쫓고 있습니다.

그는 영향을 주는 오직 한사람이 되고 싶기에 그의 회원 및 그와 가까운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합니다. 어째서 그외의 다른 이들은 자신의 발견을 알릴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그는 제가 제명되었음을 반복해서 말하는데, 모든 증거들은 그와 반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중상모략을 주장하기 위해선 진정 부정직(혹은 불성실)해지는건 불가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의 회원들이 잠에 빠져들도록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기를 자발적으로 갈구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도록 말이죠. 그는 그들의 생각속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남의 험담이나 근거없는 말은 언제나 널리 퍼지기 마련이죠. 이 가이드는 라엘, 보다 정확하게는 클로드 보리롱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에 흥미있어 보입니다.

정보를 컨트롤하고자 하는 이 가이드의 반응으로 판단하건데, 우리는 무브먼트 회원들이 직접 조사하고 외부의 새로운 지식에 눈을 뜨도록 이끄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어야 합니다.


어서, 어서, 조사하자!

어서, 어서, 조사하자! 라엘리안들이여, 라엘이 당신에게 진실을 말했기에 당신이 진실을 얻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어떻게 당신이 다른이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으면서 진실을 얻었다고 가장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동전의 다른 면 보기를 회피하는 겁니다.

당신은 마크 우드게이트 및 사지 알리, 이원준, 안자, 장 프랑수아 르콕, 클레어 라브리에, 롤랑 뒤쏘와 같은 사람에게 그들이 진행한 연구와 비판으로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라엘을 들춰냈나요? 전혀요! 그들은 어둠속에서 뛰쳐나올 준비가 된 자들을 위해 깨달음을 가져다 주고 눈을 뜨게 만들 진실을 폭로하였습니다. 진실을 파헤치는데는 증오도, 부정적인 문제도 없습니다.


스스로 눈을 가리는 자

라엘은 어째서 저에게 시험을 하고자 했을까요? 왜 오직 저에게만? 왜 몬트리올의 내 집에 도착하기전 머리카락을 자르러 갔을까요? 왜 모두로부터 잠적했나요? 왜 한여름에 몇달간이나 털모자를 썼나요? 무슨 시험으로!!! 그리고 왜 그는 고백한지 몇일 지나지 않아 저를 비숍 가이드로 임명시켰나요?

제 집에서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믿는건 쉽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명분으로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건 쉽지요. 무엇보다 이점이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것 입니다. 어째서 라엘은 다른 사람이 받은 일 없는 이 터무니없는 시험을 제게만 겪게 했을까요? 왜 그는 정직하게 나서지 못했나요? 그리고 왜 그는 저에게 그일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았나요?

현실을 받아들이길 원치 않는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기 위해 언제나 핑계와 허구적 명분을 찾을 겁니다. 이것이 신비주의적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제가 1984년 라엘의 사기를 즉시 밝히지 않는다면, 제 증언이 충분치 못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곧 전 안티라엘리안으로 간주되어, 제 집에서 라엘이 우주인과 절대 접촉한 일이 없다고 밝힌 이야기에 대해 그들(라엘리안들)은 어느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고 제정신이 아닌 말로 저에게 돌을 던지고 추문을 퍼뜨렸을 겁니다. 그리하여 이런 상대들과 대적하는 대신, 그를 이해하며 그와 맞서지 않고 그를 납득하려 노력하는 것이 제 천성이었죠. 그리고 라엘은 확실히 저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감히 그의 비밀을 절대 밝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특히 그 당시 전 그의 엘로힘을 여전히 믿었거든요!


어떤 종교적 믿음을 갖든 상관없이

어쨌든 어떤 종교적 믿음이나 신념이든 상관없이, 우리의 새로운 가치와 지식에 의해 현실이 변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기억하는건 중요합니다. 예를들어, 누군가 전에는 알지못했던 거짓으로부터의 깨달음과 폭로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야훼의 메시지(라엘을 통한)를 믿었기에 제 친구 클로드 보리롱이 제게 밝혔던 괴로운 비밀과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더 유연하다면, 더 지능적으로 우리의 논리적 근거를 보충할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일 것 입니다. 그러나, 저도 인정하지만, 제게 폭로한 후 거짓 예언자가 되버린 클로드 보리롱과 절 연결해준 우정을 갈라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라엘리안들에게 그의 고백을 폭로하면서 그와 친구들 그리고 제가 믿었던 “예언자”를 배신한다는 인상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외계인을 절대 만난 적 없다는 그의 고백 후에) 새로운 진실은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라엘리안들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지요. 그들은 모든 종류의 변명거리를 지어냈습니다. 예를들어, 제가 시험에 빠진 것이라 얘기하는 등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볼때 그들은 자신의 “예언자”를 보호하기 위해 유난히 노력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한편으로 전 라엘이 지어낸 이 거짓 메시지를 퍼뜨리는데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전 그의 거짓과 함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전 라엘에게 믿음을 의지했으나, 지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제 심장은 그와 함께 있었으며 제 이성은 그의 메시지를 퍼뜨리도록 그를 돕겠다는 제 약속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거짓이었고, 그것을 받아들이자, 그 인간, 친구이며 “예언자”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그의 미사여구에 속아넘어간 추종자들을 대가로 살아가는 신비적이고 수익성있는 예언자 사칭을 위해 어떻게 속일지 아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가식적인 “진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마치 제 몸과 영혼을 분리해야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전 이 둘이 단지 하나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분리되어 살 수 없죠. 그(라엘)와 전처럼 계속 함께할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를 고발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전 거짓 예언자를 계속 변호하길 원하는 이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진실”이 거짓임을 퍼뜨리는데 몇년간을 그들에게 바치고나서 고통스러웠으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수의 추종자들이 심지어 사실, 행동, 논란이 많은 결정들이 눈앞에 닥쳐와도 무브먼트에 남아 있죠. 그들은 입다물고 있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라엘의 “진실”은 거대한 사기, 어마어마한 거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엘이 전파한 거짓에) 더 많이 세뇌될수록, 그들의 신념산업, 소수만 이해하는 꿈, 동화를 이어가기 위해 전파를 계속하길 원하는 라엘과 그 회원들의 오류를 지적하는데 애쓰고 따르길 거부한 저는 너무 자만하는자, 위조자, 적대자가 됩니다. 논할 가치도 없어요. 그냥 시간 낭비일 뿐이죠. 그들의 가식적 진실은 라엘을 믿는다는 것의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누구나 잘못될 수는 있지요. 왜 그 사실에 또는 실수한 자에게 대항하냐구요? 저의 입장에선, 제 헌신의 끝을 가보았지만, 그러나, 그러나 저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른 이들은 매달리고 있지만) 클로드 보리롱 라엘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안 이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추정하건데, 그 이후로 거짓으로 입증된 명분에 의해 학대받아온 것 입니다. 그것은 정신의 자발적 굴복이었고 지도자의 말에 의한 조건화였으며, 전 인간으로서의 해방을 원했습니다.

우리의 신념을 떠나서, 왜 의문을 갖는 것에 두려워하나요? 거짓일까봐 두렵나요? 그는 그의 나뭇가지에서 열매를 지키려 노력하면서 자신을 강화하는 것 같습니다. 열매가 익게되면, 열매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지겠지요.

장드니 상씨